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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중보자
하나님께서는 그 사역을 행하심에 있어 중보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창조 사역을 이루심에 로고스, 아들, 2위격을 창조주로 세워 일하게 하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방식은 아버지는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로고스가 이루시므로 창조 중보자이십니다. 이 창조 중보자 로고스가 그 창조를 인해 만물의 상속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상속자인 로고스, 곧 아들 하나님을 구속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중보자는 그냥 하나님으로서 구원 중보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 되심으로 중보자가 되어 자기의 창조를 구워하게 하셨습니다.
아들 하나님, 로고스는 구원협약에 의해 삼위간에 구속 중보자로 합의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구원작정을 이루시기로 하셨습니다. 이 구원 사역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되신 후 제자들과 언약을 체결하사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확증한 구원을 위해 죽으시기로 하셨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구원 중보자 곧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요단강변에서 이루어진 세례식에서 선포된 내 사랑하는 아들은 왕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어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메시야는 죽음을 통과하고 승천으로 왕으로서의 등극을 이룹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으로 백성들을 회복하여 왕이 되셨습니다. 인류를 속량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음으로 왕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음으로 인류의 죄를 전가받았습니다. 구속주로서의 인류의 죄를 속량하셔야 하므로 인류의 죄과를 전가받아야 했습니다. 이 죄과의 전가가 공식적으로 세례 받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의인이고 무죄자이므로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었지만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므로 자기를 죄인들과 일치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죄인과 일치시킴은 죄과를 전가받는 계기였습니다. 그가 인류의 죄를 책임지고 속량하므로 회개의 세례를 받아 죄인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죄과를 전가받았습니다. 그 전가받음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입니다. 그 전가받은 죄과 때문에 저주받은 자로 죽게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는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 직임을 지닌 그리스도로 세워졌습니다. 정확하게 제사장적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메시야 곧 구속주는 왕으로 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왕으로 임직되어야 했습니다. 그 임직은 성령 세례를 받음이며 정확하게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선언입니다. 이렇게 임명된 왕은 영구히 다스리십니다. 그의 나라가 무궁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왕권은 피흘려 백성을 속량하므로 이루어집니다. 그의 다스림이 바로 죽으사 사람들의 죄와 사망에서 사서 자기의 나라를 삼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구속된 백성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 나라를 다 포용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권은 제사장적 왕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다 중보자로서의 사역입니다.
중보자의 인격
바빙크와 그의 신학전통(L. 벌코프)에서는 중보자의 인격이 그리스도 명칭들로 지시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중보자의 인격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이고 중보자로 세워졌으므로 여러 이름들을 가집니다. 이 이름들은 중보자의 직임에 따라 나타내는 그의 인격을 뜻합니다. 이유는 이름은 실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1. 예수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구원자로서 지목된 이름입니다. 예수는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구주로서 예수는 메시야와 같은 뜻입니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그의 인간적 호칭으로 붙여졌으나 그가 구원자이기 때문에 붙여졌기에 예수는 바로 메시야입니다.
예수가 메시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초 신앙고백은 주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그 예표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세상 구원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인물, 사건, 제도를 활용하여 당시 구원을 이루시면서 참구원자인 예수를 사전 표상하게 하셨습니다. 눈의 여호수아는 두 방면에서 예수를 예표합니다.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될 때 여호수아는 후기 표기인 예수아를 예수로 번역하므로 여호수아 자리에 예수가 일을 이룬 것이 되었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곧 예수는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성취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입구까지는 인도했으나 가나안으로는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루어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정착시켰습니다. 노예로 살고 유랑민으로 살던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이루어 사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백성으로는 있었으나 400여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여 나라가 없는 그들을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여 안식하게 했습니다. 나일강변에서 시작된 구원의 과정이 가나안 복지에 이르러 안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에게 참 구원을 선사했습니다. 그 이전 선지자들은 예언하고 약속했으나 실제로 구원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백성을 입성시키고 안착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입성시켰고 토지를 분배했습니다. 토지분배로 안전한 삶을 보장했습니다. 이 면에서 구원과 영생한 생을 보장하는 예수를 예표합니다. 반면 여호수아는 땅을 다 정복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완전한 분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면에서도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합니다. 완전한 정복은 다윗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분배도 이루어졌습니다. 완전한 구원의 배분은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유는 영원한 상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제사장으로 속죄를 통해 구원을 이룩한 예수를 예표합니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렇게 큰 일을 한 사람은 못되어도 성경역사에 보관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포로 귀환 후 성전을 건축하여 여호와의 종교를 재건했습니다. 여호와의 종교가 희미하고 혼합되어 있을 때 성전 제사를 회복하여 백성의 죄를 짊어진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섬김을 이룩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함께 성전을 지었는데 성전건축은 단지 여호와 종교의 회복뿐 아니라 그리스도 오심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맞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성전을 건축함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하나님께 회복시킴을 예표합니다.
2.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메시야의 번역어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선언은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임직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로 고백될 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었습니다. 이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고 이방에 공의를 베푸시는 의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구주를 뜻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은 왕이므로 이스라엘의 구주이십니다. 또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속주이며 세상의 구세주이므로 제사장적 왕입니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반열에 선 왕으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왕이고 대제사장입니다(히 7:1-28). 메시야에게 왕과 제사장이 합쳐지는 것이 후기 유대교 랍비들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왕, 하나님의 아들, 제사장입니다. 즉 왕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왕임을 선포하는 사도요한이 바르게 증거했습니다(계1:5-6). 제사장으로 그리스도는 구세주입니다. 이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예수와 일치합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포호 후 모든 세대는 정치적 구세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제받는 백성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때 메시야를 세워 압제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가 메시야로 믿어질 때 백성들의 환호는 자기들을 압제에서 구출해 줄 구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하나님의 나라 곧 압제에서 해방된 다윗왕국이 곧 수립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는 다윗의 자손이면 충분하고 메시야는 하나님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여 이스라엘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메시야는 사죄의 권세가 없었습니다. 사죄는 하나님께만 속한 권세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사한다고 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인자로서 사죄의 권세를 갖는다고 할 대 그것은 참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심으로 사죄의 권세를 갖고 그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다린 메시야는 정치적으로 왕이어서 국가의 독립과 해방을 가져오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찬송을 받을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메시야는 고난의 종으로 와서 해결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고난의 종으로 왔기에 이스라엘의 매시야 기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정치적 메시야로 오지 않고 고난의 종으로 왔기에 그가 배척되고 처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주장이 메시야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이스라엘 왕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은 기름부어 왕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왕인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합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기름부음 받아 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아론이 처음 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그의 후손들은 모두 기름부음을 받아 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이 제사장들은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참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선지자들은 소명으로 선지자직을 수행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름부음 받아 선지자가 된 예입니다. 제사장, 왕과 선지자는 함께 참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인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을 사전 표상합니다. 이 세직분자들은 감람유로 기름부음을 받아 직분을 수행하며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를 사전 표상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성령세례에 의해 매시야로 임직되고 왕으로 선언되어 하나님 나라를 설립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인류의 구원으로 죄과 제거와 용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왕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예표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의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다 이루지 못한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여 백성들에게 분배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바로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이시고 왕은 그의 위엄 통치를 하는 대리 통치자였습니다. 사울은 자기 왕조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왕되심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멸망했고, 다윗은 하나님의 왕권을 세우기 위해 일생 진력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왕조를 영원히 허락하사 그리스도의 왕권에 연결시켰습니다(삼하 7:11-17). 그래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고 그 조상이 되었습니다. 혈통으로만 영구한 나라가 지속될 수 없으므로 메시야의 영원한 나라에로 연결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왕권이 다윗의 이름으로 행사됩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왕으로 참 평화의 왕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아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완전한 속죄 제사를 이룬 제사장입니다. 구약제사에서 제사장은 제물일 수가 없는데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제사장과 제물이 일치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대제사장으로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후기 유대교 사상은 메시야와 제사장이 합쳐지는데 제사장인 왕이 출현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 기대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현대 종교신학에서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고 구주로서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설립자들에게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타 종교들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교회 신학자 K. 라아너는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유일한 사건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신인 연합이 다 가능한데 예수에게서 구현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근본을 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 자체를 허는 일입니다.
3. 인자
예수님 자신의 호칭으로 자기를 지목하기 위해 인자라는 불가해한 삼인칭형을 사용했습니다. 행 7:56에서 스데반이 한번 예수를 인자라고 지목한 것 외에는 예수의 전유적 호칭입니다. 성육신의 신비를 지시하기 위해 인자를 사용했습니다. 예수 자신이 이 칭호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서 성육신하신 사실 곧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지시했습니다.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출생을 통해 사람임을 지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으로서 신분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지시합니다. 즉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법입니다.
인자는 본래 하나님으로서 성육신하여 사람의 신분으로 전이하였음을 밝히기 위해 예수 자신이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므로 자기가 창조시에 안식일을 제정한 창조주임을 밝힙니다. 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이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함으로 자기가 하나님인데 성육신하여 하늘에서 내려왔음을 강조합니다. 또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하고 하십니다. 인자는 하나님으로서 성육신하여 사람들에게로 오신 분임을 제시합니다. 또 인자가 자기의 모든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라고 말하며 인자는 천사를 창조하고 부리는 하나님이심을 암시합니다.
인자로서 성육신하여 제2아담임을 함의합니다. 이는 인류의 새조상이 됨을 뜻합니다. 인자로 인류의 심판주가 됨을 많이 강조합니다. 또 인자는 성육신의 신비를 가장 강조합니다. 이러한 인자의 유래는 시 8:4를 70인경에서 메시야적으로 해석 번역했습니다. 에스겔서는 그 전체로 인자가 중심이 섭니다. 겔 1:26에는 보좌에 앉은 사람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하늘에 계신 인자가 예비됩니다. 이 인자에게 심판이 위임됩니다. 단 7:13-14에는 인자가 구속주로 하강함을 예시합니다.
4.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본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이 하나님과 갖는 가장 친숙한 관계를 표현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막 14:36). 성령의 특별역사에 의해 특별 출생을 표시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령에 의해 조성되고 출생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출생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을 표시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특히 요 17장 대제사장의 도고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계시던 아들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영원한 아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제2위격이 아들로 표기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로 성립되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제2위격으로 계심에 성립합니다.
고대 이단 중 에비온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아니라 한낱 보통 인간이었으나 세례 받을 때 은혜를 입어 큰 기적을 행하였고 부활하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임을 부정합니다. 근세신학은 이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을 부인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되심을 부정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신의식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운다고 하였습니다. 릿츌도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됨을 거부하고 그의 완전한 윤리 때문에 아들로 호칭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 K. 발트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속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변증법적으로 하나님의 성육신을 말합니다. E. 브룬너와 동료 변증신학자들과 그 후의 신학자들이 예수의 영원한 아들의 신분을 거부합니다.
5. 주
교회의 최초의 신앙고백은 주 예수입니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때 신적 대권자, 통치자임을 뜻합니다. 부활 후부터 주 예수라는 고백과 호칭이 주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주라는 호칭은 신적 통치자, 천지의 대권을 가진 주재를 뜻합니다. 로마 제국 당시 황제를 주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인은 주는 오직 한분 주 예수님만 계신다고 주장하여 황제를 주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습니다.
주 예수는 주로서의 구약의 야웨와 동등, 동일자임을 지시합니다. 70인경은 구약의 야웨 YHWH를 신약의 주(Kurios)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기가 구약의 여호와임을 지시하기 위해 야웨의 희랍어역인 에고 에이미(ego eimi)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존재하는 자라는 구약의 여호와 호칭을 그대로 자기를 말함에 사용하므로 예수는 자기를 구약의 여호와로 신분확인했습니다.
예수가 주로서 천지의 대권을 부활로 받았습니다. 주 예수는 교회의 주가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창조의 중보자였는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교회의 주가 되셨습니다. 주 예수는 모든 권세 곧 신적 권세를 가진 주님이시므로 교회가 안전합니다. 주께서 교회를 위해 천지만물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지옥의 문들에 의해서 무너지지 않고 안전합니다.
6. 하나님
예수가 하나님으로 고백되기는 부활 후에서입니다.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은 도마만의 고백이 아니고 전 제자단의 고백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서 성육신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시되 아버지와 구분되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이 하나님이 성육신하셨고 이 하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성육신하신 말씀 하나님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요 12:38-41에서 이사야 6장의 여호와의 환상과 그의 말씀을 주 예수에게 적용하므로 이 진리를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나 이사야가 본 구약의 여호와의 동일자임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또 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본체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지목하고 피흘려 교회를 사셨다고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또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영원히 찬송 받으실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고 고백합니다. 함의적으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지칭한 신약 본문들이 많습니다. 롬 11:36에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고전 8:6에서는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지시하는 공식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니카야 신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양성교리를 배척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이 참 본성이면 그의 인격은 인간 인격이고 하나님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7. 제2 아담
제2아담은 호칭되나 고백된 이름이 아니고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 살려주는 영이 되어 새 인류를 살려내는 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제2아담은 새 인류의 조상됨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서 2:12-13은 구약의 시 22:22, 사 8:18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에게 작용합니다. 새 인류의 조상됨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 예수를 마지막 아담, 곧 살려주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첫 아담의 실패로 새 인류를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제2아담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예수를 제2아담으로서 첫 아담에 상응하는 것을 명시했습니다(막 14:26, 눅 22:39-43, 마 4:1-5, 막 1:13). 신령한 백성을 가지시기 위해 그리스도, 제2아담을 영으로 출생케 하사 영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새인류를 조성케 하셨습니다. 또한 새 인류는 다 영으로 난 자들입니다.
8. 주의 종
주의 종의 칭호는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한 칭호입니다. 주의 종은 이사야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여 예언된 칭호입니다. 주의 종은 종의 형상 곧 피조물을 입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형상을 입어 종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이름으로 그가 예언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과 수행
1. 자기 증거
예수는 자기가 이스라엘이 바란 메시야임을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을 읽어 그것이 자기에게 성취되었다고 함으로 자기의 메시야 직임을 선포했습니다. 또 자기가 지금 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왕들이 예언하고 말한 메시야로서의 직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즉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므로 구약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그렇게 보고 듣기 바랐던 메시야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아들로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만이 아버지를 계시하여 알게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계시하고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인 아들만이 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구약 여호와의 호칭인 주님(아도나이)를 자기에게 아무런 주저없이 적용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가 성육신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자신을 지목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욕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욕하는 것이고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보다 자신이 더 크다고 하므로 바로 그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간접 화법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밝히기 위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지칭할 때 구약의 야웨의 희랍어형인 에고 에이미 ego eimi를 사용해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임을 간접 지시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성육신이 자신임을 지시하기 위해 인자란 호칭을 자기에게 전유적으로 적용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신분을 마지막 십자가 처형시 공개적으로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라고 말함으로 죽음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 직전에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시했습니다. 이 자기 호칭이 그의 십자가 처형과 정죄의 근거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말입니다. 양식사학파와 후기 불트만 학파의 주장대로 예수 자신이 이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초대 교회가 그의 입에 붙였으면 그의 정죄와 처형을 결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란 이름은 하나님 나라의 선택된 왕을 뜻합니다. 높이 찬송 받을 자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런 자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2. 전권 주장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메시야이기 때문에 자기의 매시야 주장을 산상 수훈의 전권 주장을 통해 숨김없이 나타내십니다. 산상수훈은 모세의 시내산 교훈에 대비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를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를 반복하면서 자기의 권위가 모세의 권위를 능가함을 강조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고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으로서 자신의 말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새 말씀들을 지켜야 하나님 나라에 속하고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임을 분명히 교훈하고 따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 뜻을 밝히는 마지막 선지자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강조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곧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고 단지 세례 받아 특별한 직임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에 병자에게 사죄를 선언하셨습니다. 유대교에는 메시야가 사죄의 권세를 가지지 않습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면 충분하여 나라를 회복하면 그 직임을 다 수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사죄의 권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죄를 선언하심으로 백성들이 참람이라고 비평합니다. 또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다 오라고 하심으로 죄와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을 가져다 주는 메시야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란 메시야는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 주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죄와 율법의 질곡에서 해방은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심으로 창조주이시고 안식일을 제정한 자임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므로 이스라엘의 메시야임을 알고 의식하여 구약 여호와에게 적용되었던 주님이라는 호칭을 그대로 자기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래서 마 21:3에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는 말은 주님 호칭을 정당하게 자신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가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막 12:35-37, 마 22:42-45). 그는 공생애 시작을 새 백성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그런 가르침으로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는 자들은 예수님에게 결합되어야 하고 또 따라야 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12제자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새 백성의 인도자들로서 12지파와 연관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존 옛 백성 내에서 새이스라엘 곧 새백성의 기초를 놓는 것입니다. 새공동체는 이스라엘 밖에 설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의 조직체를 긍정하여 옛백성 내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서 세우실 새백성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죽어 백성을 구원해야 할 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성전 내에서 성전을 헐라 그러면 삼일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자기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새성전은 자기의 구속의 죽음으로 생산될 새백성들 곧 교회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메시야의 나라는 정치적 나라가 아니라 자기의 죽음으로 속량된 백성들로 구성되는 것임을 확실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 몸이 성전 자체여서 눈을 솔로몬 성전에서 자신에게로 옮김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일시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갖는 반면 자기 몸에 완전 임재가 이루어졌음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생명의 주임을 밝히기 위해 자기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에 이른다고 주장하였습니다(요 3:16, 18, 11:25-26, 6:47-51). 영생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있지 않고 성육신하신 인자를 믿음이라고 하여 생명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로서는 줄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에 성령을 주는 자임을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세례 주는 자임을 제일 먼저 알고 증거한 이는 세례 요한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이 증거를 따라 자기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임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구주임을 밝히기 위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다고 탄식하십니다. 이 탄식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크게 책망하고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이것은 그들의 가르치는 율법 준수에 구원이 있지 않고 이스라엘의 구주를 믿음으로만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메시야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고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친 아버지요 그의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에게는 우리의 아버지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쳤습니다.
3. 메시야 사역
예수님은 자기가 온 목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함이라고 명시하여 메시야는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고난의 종으로 왔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것이 외적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하는 일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즉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의 음모와 시기에 의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에로 나아가고 죽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자기의 직임임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을 위해 체포될 때에도 그 자신 스스로 죽음에 이름을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자기 임의로 동원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이라고 하므로 분명히 하였습니다.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하므로 그의 메시야 직임을 다하였습니다. 이렇게 메시야로 죽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다 이루었음을 그 입으로 밝혔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세상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었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므로 자기의 죽음이 하나님이 이루신 속죄 제사였음을 밝혀 세상을 구원하는 직임을 메시야로서 다 수행하였습니다.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 인물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로서 죽고 부활하여 구원을 성취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자기의 속죄 사역을 통해서 구원에 이름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 곧 바리새인들과 율법을 집행하는 사두개파를 공격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세리와 창기들은 영접하므로 이스라엘이 서 있는 기초를 완전히 헐은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또 율법을 지킴으로 의 곧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영생에 이른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전혀 아니고 의 곧 구원에 이름은 은혜이어서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하여 율법의 성취를 전적으로 부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존립 기초를 완전히 허는 것이므로 살려둘 수 없는 자로 정죄되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구원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가르침에 의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서 나아가 자기의 구속사역으로 구원에 이름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어서 자기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 죽지 않고 영생에 이른다고 강조하여 유대인들의 혐오를 샀습니다. 이에서 나아가 양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자기의 육체의 죽음으로 구속이 이루어짐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증거하고 선포하였으므로 메시야로서 백성들에게 해방을 주기 위해 각종 질병을 고쳤고 광야에서 백성들을 먹이므로 자기를 모세와 같은 일을 한 자로 나타내어 이스라엘의 구출자로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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